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단치히 폴란드 우체국 방어전 (문단 편집) == 전투 종결 이후 == [[파일:10_557201.jpg]] SA와 단치히 경찰이 바라보는 가운데 SS가 포로가 된 집배원들을 후송하는 모습. 그 후 부상자 16명 중 6명은 부상 후유증으로 병원에서 죽게 된다. 6명 중 5명은 전신화상으로 인해서 사망하였고 나머지 1명은 두개골에 입은 총상으로 사망하였다. 이들 중에는 10살밖에 되지 않은 청사 관리인의 딸인 [[https://pl.wikipedia.org/wiki/Erwina_Barzychowska|에리나 바지호프스카]]가 포함되어 있었고 그녀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발생한 최초의 어린이 희생자였다. 퇴원한 나머지 경상자 10명과 다치지 않고 항복한 우체국 공무원들 28명 등 총 38명은 독일 60보병사단이 연 군사재판에서 빨치산으로 간주되어 9월 8일에 일방적으로 사형 판결을 받고나서 10월 5일에 [[총살형]]으로 처형됐다. 그러나 4명은 탈출해 잡히지 않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았다. 전쟁이 끝나고 50년이 지나 1995년 독일 뤼베크 지방법원은 나치에 의해서 처형되었던 38명에 대하여 재심을 실시하였다. 법원은 당시 독일군이 단치히 자유시에 사는 38명을 재판할 권한이 없다고 판결을 내렸고 처형당한 이들 모두가 무죄를 선고받으며 명예를 되찾게 되었다.[* [[https://en.wikipedia.org/wiki/Defence_of_the_Polish_Post_Office_in_Danzig#cite_note-13|Kriegsverbrechen in Europa und im Nahen Osten im 20. Jahrhundert, Franz W. Seidler / Alfred M. de Zayas (Hrsg.), Hamburg : Mittler 2002, Seite 138]]]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